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Blaise Pascal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다면, 그 존재를 믿는 편이 ‘합리적 도박’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보상은 무한하고, 존재하지 않아도 잃을 것이 없다. 반대로 신을 믿지 않다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손실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 도박 이론은 그 자체만으로는 마치 고전적인 신학 논쟁의 흔적처럼 보이지만, AI(AI, Artificial Intelligence)와 VR(Virtual Reality), BCI(Brain-Computer Interface), 그리고 blockchain 등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오히려 더욱 도발적인 함의를 갖게 된다.

Blaise Pascal
기술이 생명을 연장해주고, 의식을 시뮬레이션하며, 심지어는 digital immortality까지 가능하게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신을 필요로 할까? 혹은, 인간이 만든 ‘영원성’이 신앙의 약속을 넘어서는 시대가 이미 열린 것은 아닐까?
기술이 다시 쓰는 사후 세계
오랫동안 사후 세계는 종교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천국과 지옥, 혹은 환생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은 생과 사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오랜 종교적 교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AI 기술의 발달은 개인의 목소리, 기억, 성격 등을 물리적인 죽음 이후에도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 예를 들어 Microsoft는 과거 대화 내용을 분석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모습을 대화형 챗봇으로 재현하는 기술 특허를 얻었고, HereAfter AI는 개인의 이야기를 기록해 digital avatar가 후에 유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한다. Replika 같은 프로젝트 역시 인간의 행동 패턴을 학습해 점차 정교하게 모방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공상과학영화 속 설정이 아니다. 실제로 죽음이 종말이 아닌, 데이터로 영속되는 또 다른 형태의 ‘이행’이 될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과거 종교가 ‘믿음’을 통해 영원을 약속했다면, 이제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통해 영원에 가까운 무언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Pascal의 도박은 새로운 선택지를 만나게 된다. 전통적으로는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였지만, 이제는 기술적 불멸(technological immortality)이라는 옵션이 등장했다. 무한 보상을 기대한다면, 신앙보다 기술에 투자하는 편이 더 ‘안전한 도박’일 수도 있지 않을까?
메타버스와 존재의 재정의
또 다른 변수가 있다. metaverse의 부상이다. 본래는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용 가상공간이었던 곳이 이제 인간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무대로 확장되고 있다.
Eternime 같은 프로젝트는 소셜미디어 활동, 음성 기록, 개인 데이터를 수집해, 사람이 죽은 뒤에도 대화형
digital clone으로 남아있도록 돕는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온라인 추모관에서 유족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AI 아바타와 마주하기도 한다.
Eternime 프로젝트는 2014년 MIT 펠로우 Marius Ursache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인공지능을 통해 디지털 불멸성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개인의 소셜 미디어 게시물, 이메일, 스마트폰 데이터, 웨어러블 기기 정보 등 디지털 흔적을 분석하여 사용자의 성격, 습관, 기억 등을 모방하는 AI 기반 아바타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ternime은 인간이 사망한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며, 기술을 통해 회상, 위로, 그리고 연결의 가치를 증진하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고인을 닮은 AI 아바타를 제작함으로써 인간의 유산을 보존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이에 따르는 심리적 및 윤리적 문제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생각, 기억, 성격이 이 디지털 공간에서 계속 이어진다면, ‘영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더 나아가, 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의식이 보존될 수 있다면, 전통 종교가 제시해온 사후 세계의 가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 Pascal이 “신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단순하게 물었다면, 지금은 “인간이 만든 디지털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맡길 것인가”라는 세 번째 질문이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식 업로드, 새로운 부활의 형태?
기술적 불멸론의 극단을 보여주는 예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연구다. Elon Musk의 Neuralink 같은 기업들은 뇌와 디지털 네트워크의 직접적인 통합을 탐구하면서, 언젠가는 인간의 기억과 인지 패턴을 클라우드에 저장해 ‘디지털 복제’를 가능케 하겠다는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이른바 consciousness uploading이 실현된다면, 인간은 정말로 ‘죽는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생물학적 형태에서 디지털 보존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닐까? 한때 철학이나 종교에서만 머물던 이 질문들이 이제는 신경과학과 AI 분야의 실제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결국 Pascal의 핵심 물음—“차라리 안전한 쪽에 걸지 않겠는가?”—은 이렇게 달라진다. 신의 존재를 믿는 대신, 내 뇌를 디지털로 업로드하는 편이 더 안전한 선택은 아닐까?
이는 개인 수준을 넘어 사회 전체에도 거대한 딜레마를 안긴다. 가령 디지털로 ‘부활’한 존재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이들은 삭제될 수 있는가? 이들의 삶은 과연 ‘진짜’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과거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윤리적·법적·존재론적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현대판 바벨탑, 그리고 신의 침묵
혹자는 이 모든 시도가 과거 성경의 바벨탑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Book of Genesis에 따르면, 인간이 하늘에 닿으려던 거대한 탑을 신은 인간들의 오만으로 여기고, 이들의 언어를 흩어 세상을 분열시켰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쌓아올리는 탑은 벽돌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뉴럴 네트워크로 만들어지고 있다. AI, blockchain, VR, BCI 등이 결합돼 보이지 않는 초월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규모와 파급력은 어쩌면 바벨탑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사람들의 상상속의 미래 바벨탑

미래의 바벨탑에 대한 상상도 01

미래의 바벨탑에 대한 상상도 02

미래의 바벨탑에 대한 상상도 03
그렇다면 신은 이번에도 간섭에 나설까, 아니면 그대로 지켜볼까? 어쩌면 신은 인간의 창조적 도전에 더 이상 분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만든 인간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그저 ‘내기’하듯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시대는, 신이 직접 도박판에 뛰어드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두고 보자.”
어쩌면 인간들은 이제 올라가는 방식을 생각하지 않고 휴대하거나 장착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꿨을수도 있다.
Pascal의 시대에서 우리의 시대로 흐르는 이 질문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한쪽에선 신앙이, 다른 한쪽에선 기술이 인간을 ‘영원’으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혹은 새롭게,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안전한 내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