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의 불편한 진실부터 시작해보죠. 당신이 오늘 지나친 그 푸른 잔디와 잘 깎인 덤불 뒤에는 공동묘지가 숨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혹은 매일매일 밟고 지나가던 그 거리는 아주 오래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 그 현장이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도시 계획가들은 당신이 그 불편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정성껏 위장해두었으니까요. 현대 도시에서 죽음은 마치 창피한 친척처럼 숨겨지고, 물리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추방되었습니다.

"모든 도시는 두 개의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 있는 자들의 도시와 죽은 자들의 도시." 이탈로 칼비노가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두 도시를 그토록 필사적으로 분리하려 할까요?

뉴욕의 BigCdotWorks에서 Death and The City Projects를 디자인하고 구축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종종 도발적인 질문을 받습니다. "왜 굳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나요?" "그런 프로젝트를 왜 하는 거지요?" 물론이죠, 넷플릭스 보면서 Ready Made 음식 먹는 게 훨씬 편하니까요.

하지만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숨기면 숨길수록, 우리의 삶은 더 얕아집니다.

당신은 지금 자살률이 높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서울에서는 매일 10명 이상의 노인들이 홀로 숨을 거두고, 그들의 시신은 몇 주 후에야 발견됩니다. 뉴스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인사들의 자살 소식을 종종 보도합니다. 일본의 '고독사(코도쿠시)'는 이제 특수 청소 업체가 생길 정도로 흔한 현상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유럽 대도시의 젊은 세대는 역사상 가장 발달된 소통 수단을 가졌지만, 동시에 가장 단절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70만-80만 명이 자살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이는 전 세계적으로 약 40초마다 한 명이 자살로 사망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살의 영향을 받는 직접적인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 연구에 따르면 한 명의 자살은 평균적으로 약 135명의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이웃 등 고인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 더 넓은 범위에서는 자살 한 건당 약 6명의 "생존자"(심각한 감정적 충격을 받는 가까운 사람들)가 발생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영향은:

  •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자살 관련 소식은 기존 미디어보다 훨씬 빠르게 퍼질 수 있으며, 특히 청소년층에서 "전염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일반인의 자살 관련 소식은 소셜 미디어에서 수천에서 수만 명에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유명인의 경우:

  • 유명인의 자살은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에 따르면 유명인 자살 후 일반적으로 자살률이 약 0.26-12.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매우 유명한 연예인이나 공인의 경우, 그들의 자살 소식은 수백만에서 수십억 명에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한국의 유명 연예인 자살 사건 후 해당 국가의 자살률이 약 65%까지 증가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자살의 영향이 단순히 한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넓은 커뮤니티와 사회 전반에 파급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우리가 죽음을 볼 수 없게 숨겨둘수록, 죽음은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론적 탐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절실한 사회적 필요에 대한 반응입니다. 코펜하겐 대학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지역사회 추모 공간이나 세대 간 공동묘지와 같이 죽음을 상기시키는 요소가 있는 동네에서는 공동체 결속력이 유의미하게 높고 사회적 고립 비율이 낮았습니다.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생각만 해도 우울해요" - 정말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우울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정반대입니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해골 모양의 장신구와 함께 살았고,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은 가장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축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는 부모님과 가끔 집 근처의 그린우드 공동묘지를 산책하며 우리가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제가 디자인한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존하는 도시 컨셉을 경험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디지털적인 접근을 결합했습니다. 이 컨셉 디자인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슬픔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향상되었고, 생활 속 스트레스에 더 강한 회복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거 아닌가요?" - 아닙니다, 인간적인 겁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개념을 접하면 종교적인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 이는 종교나 신념의 문제가 아닌 부정할 수 없는 생물학적 사실입니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문화와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제안하는 디자인은 특정 종교의 내세관이나 교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이는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가장 근본적인 경험, 즉 삶과 죽음의 순환에 기반을 둡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영원한 도시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자 믿음으로 이어지기는 합니다.

자살 예방에 대한 급진적 접근

이제 가장 민감한 부분을 이야기해 봅시다. 제 디자인의 가장 도발적인 측면은 자살률 감소에 대한 접근법입니다.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람들이 죽음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는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거나, 현실의 고통과 타인의 질타를 피하고 싶어서입니다. 때로는 연예인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만큼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익명의 대중들도 이에 한몫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죽은 후에도 다시 만나게 될 도시를 상상한다면 어떨까요? 현재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다시 마주치게 되고, 도피하려 했던 문제들도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렇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 대신 현재의 문제와 맞서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도 자신의 행동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죽음 너머의 또 다른 도시를 상정했을 때 자살률이 낮아지고, 우리가 더 진지하고 윤리적으로 살게 되는 이유입니다.

죽음을 탈출구가 아닌 공동체 내에서의 전환으로 인식하도록 디자인된 공간에서, 사람들의 자살에 대한 개념이 변화했습니다.

산 자들을 위한 변화

결국, 제 작업의 핵심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죽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도시 공간에 통합함으로써, 우리는 더 깊이 있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BigCdotWorks의 '죽음의 문까지 연결되는 디지털 브릿지' 디자인은 활기찬 공공의 활동과 아름답게 설계된 통과 의례를 디지털적으로 그리고 행동적으로 연결합니다. 죽음을 숨기는 대신, 이 다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과 고인을 기리는 공간 사이에 시각적, 물리적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명상하고, 때로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조금 더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왜 죽음과 공존하는 도시인가?

우리는 이미 높은 건물과 빠른 인터넷을 가진 도시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도시들 속에서 사람들은 외롭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더 많은 앱, 더 빠른 배달 서비스, 더 멋진 아파트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제가 디자인하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는, 결국 더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도입니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에 관한 것입니다. 죽음의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오늘의 샷건 술 한 잔, 내일의 넷플릭스 마라톤 시청 이상의 것을 위해 살게 됩니다.

세계 인구가 고령화되고 도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인간 존재의 모든 단계를 인정하는 도시의 필요성은 점점 더 시급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유일한 확실한 미래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 세계 지역사회가 의미, 연결, 소속의 위기에 직면한 지금,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을 포함하도록 도시를 재구상하는 것은 더 회복력 있고 연결된 도시 미래를 향한 의외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도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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